근로기준법과 전공의 특별법‘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헌법은 근로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근로조건을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정된 것이 근로기준법이다. 1969년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고 전태일 열사의 희생 덕분에 현재 대한민국은 최저임금제를 기본으로 한 노동기본법이 확립되어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근로기준법의 최소 조건을 적용 받지 못하는 직군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대학병원 ‘전공의’이다. 여러 번의 대법원 판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듯이 전공의는 병원에서 수련을 받으며 근무를 하는 엄연한 근로자다. 주당 110시간 이상을 근무하며 근무 시간당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이 근로자들은, 수련을 받는 교육생이라는 명목 하에 최소한의 근로수당조차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수련 제도라는 굴레 아래 헌법에서 명시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전공의가 수련 과정에서 근로자로서의 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독립된 수련평가기구의 부재이다. 현재, 전공의 수련 규칙상 전공의 수련을 관장하는 감독 기관은 대한병원협회 산하 병원신임평가위원회이다. 전공의 수련에 관한 부분을 보건복지부로부터 위임 받아 집행하는 기관이 병원 경영진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이기 때문에 전공의 수련이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지지 못하고 최소한의 근로 조건을 지키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노사간의 협의가 필요한 시점에서 사측이 노측에 전권을 휘두르는 것과 같은 모양새라고 하면 과장된 것일까?2009년 대한병원협회 병원신임평가위원회는 전공의의 연속 48시간 초과 당직을 금지하고 14일 유급 휴가를 보장하는 내용 등이 담긴 전공의 표준수련지침을 마련하였으나, 이 수련지침은 권고안 수준으로 강제성이 없다 보니 있으나마나 했다. 유급 휴가, 퇴직급여제도, 시간 외 근로수당 지급 등 근로기준법에서 명시한 여러 항목이 표준수련지침에도 기재되어 있으나 강제성과 처벌 규정이 없는데 과연 어느 누가 지킬 것인가? 2012년 당시 전국적으로 일어난 ‘전직 전공의 당직비 진정과 소송의 건’ 이후, 소송비의 증가와 늘어날 수련비용 부담을 우려한 대한병원협회의 주도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당직수당을 지급하였으나 이는 허울 뿐이었다. 2014년 4월 1일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표준수련지침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되자, 당시 병원계는 대체 인력 투입 및 당직 수당 지급 등에 따른 수련 비용 증가의 부담을 느끼면서 온갖 편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전공의의 근무 시간이 소폭 감소되었으나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최대 근무 시간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였고, 임금 지급내역에서 기본급을 삭감하고 근로일지를 허위로 작성하는 방법으로 당직 시간을 줄여 당직근로수당을 정상적으로 지급하는 것처럼 꾸몄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대학병원이 전공의 입사시에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업무에 바로 투입시키면서 포괄임금제를 적용시켰던 사례가 만연했으며, 입원전담 전문의제(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두고 병원 측과 전공의 간의 갈등이 고조된 나머지, 최근 다수의 병원에서 전공의 파업 사태가 연달아 일어났던 것을 보아도, 미봉책으로 일관한 그간의 대응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전공의를 전문의에 비해 값싸게 많은 일을 시킬 수 있는 노동력으로 간주하던 풍토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한번쯤 돌이켜볼 만하다. 제대로 된 지침이 있어도 준수하지 않았을 때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전무한 상황이니 사용자가 규정을 지킬리 만무하다.하지만 전공의 수련 비용을 국가 지원 없이 오로지 대학병원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병원계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보통의 대학병원의 경우 표준수련지침을 제대로 준수했을 때 추가 소요되는 당직비 규모만 최소 100억 이상에 달하고, 전공의 인건비뿐만 아니라 전공의 수련 관련 기타 행정직원 인건비와 행정비용, 학술비용, 지도전문의 인건비 등을 국가 재정 지원 없이 수련병원이 100%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지키기엔 재정적인 한계가 반드시 따른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이러한 전공의 수련 비용을 국가가 대부분 지원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재정 지원이 전무한 상태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전문의 양성 과정에 국가가 어떠한 비용 부담도 하지 않고 있고 민간에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어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준수시 발생하는 대체인력 충원에 따른 비용을 정부가 보상하는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공의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필수적인 세 가지 조건인 독립된 수련평가기관 설립, 수련지침 준수의 강제성 부과, 수련 비용의 국가 부담 명문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전공의 수련에 관한 제반 사항을 법제화시켜야 한다. 1988년부터 연이은 전공의 퇴직금 소송의 건을 통해 퇴직금 지급을 하지 않았던 과거의 역사가 바뀐 것처럼, 최근의 전공의 당직비 소송 건의 결과를 보았을 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기 위해 투쟁했던 노동자들의 기본권 강화가 전공의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전공의를 피교육자가 아닌 정당한 근로자로 인정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수련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본적인 과정인 것이다. 저비용, 저부담, 저효율의 3저 시스템으로 망가진 대한민국 의료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대안, 그것은 바로 전공의 특별법의 입법이다. 전공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병원 내 도제식 수련 시스템상 최소한의 권리조차 누릴 수 없는 위치에서 기본권만 보장해 달라는 것이 전공의들의 주장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전공의가 인간의 존엄성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 반드시 지켜졌으면 한다. ‘전공의 특별법을 제정하라!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이건홍 現 전국의사총연합 운영위원前 대한의사협회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