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KOREAN INTERN RESIDENT ASSOCIATION

[성명서] 정부는 국민건강권을 단두대에 올려놓고도 의료인들의 침묵을 기대하는가

정부는 국민건강권을 단두대에 올려놓고도 의료인들의 침묵을 기대하는가

 

-의료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국민건강권을 위협하는 무분별한 규제완화 추진하는 정부를 규탄한다-

 

 

정부는 지난 12월 28일 규제기요틴 민관합동 회의를 개최해 경제단체로부터 건의 받은114건의 규제완화 사항에 대해 범정부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지난해 11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의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소명하지 못하면 일괄 폐지하는 규제 기요틴을 확대해 규제혁명을 이룰 것"이라는 발언을 했는데대통령의 이러한 규제 사형선고에 대한 화답으로 정부가 114건의 규제 사형수를 선정해 발표한 것이다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 하에 보편적 국민 권익을 위해 필요한 규제들까지 분별없이 철폐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비판을 각계로부터 받고 있다규제기요틴은 특히 보건의료분야에 있어 국민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이 명백하여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를 묵과할 수 없다.

 

첫째규제기요틴은 의료체계에 되돌릴 수 없는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의료비용의 비효율적인 상승을 일으킬 것이다.

정부는 의료계의 의견 수렴도 없었고 뚜렷한 근거를 설명하지도 않은 채 경제단체의 건의사항만을 듣고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정부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에 관해 의료기기별로 유권해석을 통해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진단·검사기기를 새롭게 규정하겠다고 밝혔다하지만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도록 허용한다면 그것은 면허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의료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이를 행정부의 유권해석만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법체계를 무시하며 혼란을 초래하는 발상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의료체계에서 한의학과 현대의학은 교육과정과 임상적 차원 모두에서 이원화 되어 있다학문적 기초가 현대의학과 서로 다른 한의사는 현대 의료기기를 적재적소에 사용할만한 기초적 지식과 임상적 훈련을 쌓은 적도 없고 검증 받은 적도 없는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다현대의학의 모든 행위들은 근거중심의학의 원칙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무작위 대조군 연구를 실시하거나 축적된 보고들에 대한 메타분석을 통해 근거가 확립된 경우에 한해 검사와 처치를 적용하도록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다하지만 한의학은 현대의학의 근거중심의학 패러다임과는 별개의 체계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한다한의사들이 의학적 원리에 근거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한의학 체계를 배운 적도 없는 의사들이 한의학 원리에 기초한 탕약을 제조하는 것과 다를 것 없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이러한 의료체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무작정 허용하겠다는 것은 의료계와 한의계간 극단적인 갈등만 초래할 뿐이다.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도록 허용되면 의료기 관련업계의 입장에서는 의료기기를 판매할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는 도움이 된다는 주장인지도 모르겠다하지만 현대의료기기 사용으로 추가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된 한의원들은 현대의료기기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게 될 것이고 투자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더 많은 의료기기 사용 처방을 내려 할 수 있다이렇듯 공급자 유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 의료의 특수성이다한의사들이 불충분한 근거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 의료재정이 낭비된다면 그 비용은 모두 국민들의 호주머니에 부담을 줄 것이다.

규제기요틴에는 비의료인에 의한 문신행위와 카이로프랙틱 행위 허용 또한 담겨있다비의료인도 소정의 관련 교육만 받으면 인체 침습행위와 도수치료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이러한 행위들은 인체에 대한 침습성 있고 부작용의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어 국민건강에 대한 보호를 위해 규제해온 것이다경제인들의 요청이 있다고 해서 국가가 앞장서서 이를 허용하겠다는 것은 국가가 국민건강을 돌볼 책임을 포기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둘째 정부가 발표한 규제기요틴은 다름 아닌 국민건강권을 겨누고 있는 칼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