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슈

|칼럼| '김사부'가 아니면 안 되는 병원 (제23기 대한전공의협의회 이경민 수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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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낭만 닥터 김사부 시즌2가 시작됐다. 시즌1을 재미있게 보아서 시즌2 시작 소식에 기대를 품고 첫 방송을 보았다. 비현실적인 트리플 보드, 김사부의 실력은 여전히 드라마틱했고 돌담 병원도 인간미가 넘쳤다. 의사를 꿈꿀 때나 의사로 일하고 있을 때나 의학드라마는 여전히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조금 변했다.

시즌1이 방영된 2016년 겨울에 나는 인턴이었다. 병원에 발을 들이고 환자들과 마주한지 겨우 6개월 밖에 되지 않는 초자 의사였고, 공부를 핑계로 잠깐 소홀했던 의사로서 열정과 낭만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 때 김사부는 나의 열정과 낭만에 불을 지피는 존재였다.

시즌 1에서 김사부는 항상 '의사'이다. 개인의 삶은 없고 환자만 생각한다. 신의 손이라 불리면서 성실하기까지 하다. 성실함은 언제나 병원에 상주를 하는 형태로 표현됐다. 응급실 침대에서 자다가 환자가 오면 일어나서 진료를 하는 모습,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에 대해 24시간 내내 집도의, 주치의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전공의 법이 시행되기 전이었던 2016년 당시에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내 생활을 그나마 자랑스럽게 만들어주는 마약 같은 드라마였다.

3년이 흘렀고 김사부와 돌담 병원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변했다. 위험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김사부보다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의사, 박민국에 더 관심이 갔고 그 장면은 어딘가 많이 불편했다. 비가 쏟아지는 밤 버스 전복사고가 발생했고 폭발의 위험이 있다며 탈출을 재촉하는 아우성 속에 김사부와 박민국이 비춰진다.

박민국은 인정받는 외과의로 나오지만 김사부와는 대립의 각을 세우는 인물이다. 그 이유가 이 버스에서 시작된다. 전복된 버스에서 김사부는 탈출하지 않고 쓰러진 승객의 심폐 소생술을 시행하고 있었고 박민국은 탈출하려던 와중에 그 장면을 본다. 그리고 탈출을 선택한 박민국은 의사로서 사명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마치 의사로서 고개를 들지 못 할 일을 한 듯한 박민국의 표정을 보는 순간 3년 전부터 불편했어야 했던 드라마의 내용들이 떠올랐다. 김사부는 시즌1부터 시즌2까지 24시간 365일 당직이다. 돌담 병원에 응급이 생기면 환자를 볼 사람은 한 명이기 때문에 응급 환자가 없어 드라마에 나오지 않았던 날에도 그는 병원에서 30분 이상의 거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김사부가 본원에 올라가는 날이면 돌담 병원 주변에서는 아픈 사람이 없기를 기도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재단과 본원에서는 인력 보충에 관심이 없다. 수익성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겨우 충원되더라도 본원에서 쫓겨나듯 전출되는 형태이다.

이런 시스템은 김사부를 영웅으로 만들기에 딱 좋은 전제 조건이었다. 드라마는 시스템이 잘 못됐다고 목소리를 내는 대신에 현실에 있을까 말까 하는 김사부를 칭송한다. 여기까지는 그냥 드라마이니까,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덤빌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전복된 버스에서 탈출하는 의사를 도망치는 겁쟁이처럼 그려낸 연출에는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다.

심정지 의심되는 환자를 발견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장 안전 확보이다. 2015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에서도 반응확인 전에 현장의 안전을 확인하고 접근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고 응급의학 교과서에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폭발의 위험이 있는 곳, 붕괴의 위험이 있는 곳, 또는 바닥이 젖어 있어 제세동기 사용 시 감전의 위험이 있는 곳 등을 피해 심폐소생술이 제공돼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비가 와서 촉촉이 젖었고 폭발의 위험이 있는 기울어진 버스 안에서 심폐 소생술을 시행한 김사부는 사명감이 대단하고 '영웅적'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버스를 빠져나온 박민국이 '의사자격 없는 사람'처럼 그려질 이유는 없었다. 박민국은 꼭 그런 표정으로 전복된 버스를 빠져나갔어야 할까? 또한 그 선택으로 평생 열등감에 빠져 사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은 또 어떤가?

의사는 분명히 사명감이 필요한 직업이다. 가끔은 퇴근도 반납하고 밥도, 잠도 반납해야 할 때가 있다. 잘 못된 시스템 속에서도 분명히 환자는 발생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살려야 한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칭찬하고 존경하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명감이 모든 의사를 '김사부'로 만들지 못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돌담 병원처럼 의료가 사명감과 개인의 열정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사부'와 '박민국'의 대립은 돌담 병원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게 만든다. 관점을 개인에 국한시켜 시스템의 문제점이 가려지고 의료 발전을 막는다.

'박민국'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박민국'은 보통의 사람이고 보통의 의사이다. '김사부'의 열정을 존경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열정 페이'에 담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통 사람이 모두 '김사부'가 될 수 없고 '김사부'만 의사가 될 수도 없다. '김사부'를 존경하되 김사부가 아니면 안 되는 시스템에 대한 매서운 칼날을 엄한 곳으로 돌려 무디게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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