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슈

|칼럼| 닥터 K, 메이드 인 코리아 (제22기 대한전공의협의회 남기룡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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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K가 일하는 병원은 환자들로 붐빈다. 환자를 위한 진정한 의료에 힘쓰는 닥터 K는 매 진료 무려 3분이나 되는 시간을 할애하며 환자를 위해 제일 비싼 비급여 약제를 처방, 병원 운영에 가장 도움이 되는 효율적인 진료를 한다.

환자의 건강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닥터 K는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 돈이야 말로 K의 가장 큰 자긍심이다. 물론 가끔씩 고도의 의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들은 닥터 K의 전문과도 아니고 닥터 K가 일하는 병원 수준이 아니기에 3차병원을 추천한다. 위대한 경제 대국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중요한 부품이 되어버린 K는 문득 고등학생 때를 떠올려본다. 그때 생각했던 의사와 지금 현재 자신은 뭔가 많이 다른 듯 하다.

고등학생 K는 공부를 잘하는 똑똑한 모범생이었다. K는 자신의 능력을 인류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써야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의사라는 직업 이야말로 인류와 사회에 기여하는 최고의 직업이라고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K는 투철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발휘한다는 온전한 자유의지로 열심히 공부하여 의대에 입학하였다. 물론, 온전한 자유의지라는 건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K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의대에서 K는 공장에서 제품이 나오듯 의사로 제조된다. 의료인력에 대해선 제조라는 말 대신 양성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 듯 하지만, 본질적으론 같은 듯 하다.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의대 교육과정과 전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K가 장착하게 되는 것은 수많은 의학 지식과 의사로서의 자부심, 추가 옵션으로 특권의식도 부여된다.

건강에 대해서 의사가 제일 잘 안다는 믿음과 힘든 과정을 겪었다는 피해의식까지 덤으로 장착한 의사가 제조된다. 의사 제조과정은 그렇게 복잡하진 않은데 공장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본과'라는 이름으로 4단계를 거치고 마지막으로 국가고시라는 불량테스트를 하게 되면 보건복지부 인증 의사가 만들어진다.(Made in Korea, designed by 보건복지부) 일반적으로 단계별 검열 과정이 있어 불량은 회수하여 유급이란 방법으로 각 단계를 다시 거치게 된다.

일반의 전문의 할 것 없이 실제로 사회가 요구하는 건 양질의 실력 있는 의사 라기보단 K 에게 부여된 면허번호와 서명이었다. 보건복지부 인증 면허증 및 자격증을 얻은 닥터 K는 자본주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굶어 죽을 일은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것 때문에 K의 부모는 K를 의대에 보내려고 했고 의대 과정이 힘들다고 엄살은 피웠을 망정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괴로워하는 취업준비생들과는 전혀 다른 과정을 거쳤다. 컨베이어벨트는 꽃길은 아니었지만 어떤 길인지,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눈에 아주 잘 보이기 때문에 두려운 길은 아니었던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를 다 마치고 훌륭하게 양성된 의사 닥터 K는 대학병원에 남고자 하였다. 다만 경험 많고 숙달된 의사들이 교수라는 노동자로 자리잡고 있던 대학병원에 남는 것은 실패하였기에 K는 개원을 하게 된다.

의학적 지식 이외에 아무것도 없이 갑작스럽게 의원을 차린다고 잘 될 리는 없겠지만 은행은 K의 면허번호와 서명만 확인한 후 거금을 대출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안 그래도 포화된 수도권에서 병원 경영은 실패로 돌아갔고 K에게는 수억의 빚만 남겨졌다.

그렇지만 괜찮다. 보건복지부 인증 훌륭하게 양성된 의사인 닥터 K는 소위 '페이 닥터'라는 고용 형태의 노동자로 일하면 수년 내지 수십년 안에 빚을 결국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게 착취당하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컨베이어벨트에서 교육받은 특권의식과 의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덕분에 닥터 K는 스스로를 자본가 계급이라고 생각하면서 살 수 있다.

K가 컨베이어벨트에서 공부했던 수많은 지식과 의사로서의 역량은 대부분 아무 쓸모가 없지만 그런 직업으로서의 소외감도 괜찮다. 의사로서 버는 돈, 명품 옷, 고급 자동차만 있으면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허세 가득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닥터 K는 허구의 인물이다. 필자는 예방의학과 레지던트이자 보건대학원 정책 연구실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이름에 K가 들어가긴 하지만 닥터 K와는 별개의 인물이다. K는 한국, Korea에서 따온 것으로 의사로서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현대 한국 의사의 모습 중 하나이다.

야구나 과거 특정 만화책에서 언급된 닥터 K는 유능한 투수를 의미하거나 사명감 깊은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필자의 닥터 K는 유능함 인증마크를 달아 놓은 자본주의의 노예에 가깝다. 이것이 필자가 관찰한 현대 한국 사회에서 의사의 모습이다.

시스템에 의해 자기 결정권을 잃어버리고 기계의 부품처럼 일만 하는 처방 머신이 되어 박탈감과 소외감에 젖어가는 전문가 집단. 자아의 존재 의미를 경제능력 밖에 찾을 수 없게 되자 수많은 의사들은 돈 버는 데 목을 매게 되었고 이러한 의사들의 모습에 국민은 신뢰를 잃고 등돌리고 있다.

필자가 처음 의대에 들어갔을 때 몇가지 불편함을 느꼈는데 이는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교육과정에 있었다. 물론 익히 들어 알고 있었을 살인적인 의대 교육과정과 그 뒤를 기다리고 있는 비 인간적인 전공의 수련 과정은 불편함의 원인이 아니다.

살인적 이라니, 그래 봤자 의사면허를 부여하는 국가고시에 떨어지는 인원은 전국에 10%도 안되고 비인간적인 전공의 수련 과정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훨씬 비인간적인 직업도 한국엔 많이 존재할 터이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뒤 약 10여년간의 삶이 단번에 결정되어 버리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박탈이 불편함의 원인이었다.

의대 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두번째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것은 의사 직종의 폐쇄성과 위계질서 때문이었다. 의대 동아리는 폐쇄적인 의대생 만을 위한 동아리가 상당히 많이 존재하였고 다른 과들과 교류가 극히 적었다. 뿐만 아니라 선후배 관계를 비롯해서 병원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위계질서가 굉장히 분명하였다. 이것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 중에 들여온 일본의 도제식 교육 방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턴 레지던트 과정이야말로 도제식 교육의 폐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전문의가 되려면 병원 청소부터 해라 라는 것과도 비슷한 수련과정이다. 위계질서 하에서 상하 권력관계를 이용하여 전문성이나 역량 교육과는 전혀 무관해보이는 업무들마저 도맡아 수련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도제식 교육의 병원 문화를 의대생 때부터 일명 '개념' '예의' 라는 이름 하에 주입식으로 강제하게 된다.

의대생들은 어차피 졸업을 하더라도 폐쇄된 사회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끝없이 마주해야 할 선배들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권력 관계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 매년 컨베이어벨트에 의해 주입되는 공부도 양이 많다 보니 선후배 관계, 또는 윗년차 아랫년차 간의 지식 차이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지식의 권력 차이, 경험의 권력 차이에 의해 위계를 깨뜨릴 수도 없고 무조건 "네 죄송합니다"로 일관된다. 위계 질서 내에서 의견 표현의 자유가 떨어지면서 생기는 박탈감을 똑같이 후배들에게 권력 남용의 형태로 의견 강요가 이루어진다.

물론 많은 한국사회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적어도 필자의 경험에서 의대는 대학이라고 하기 보단 의사 제조 공장에 더 가까워 보인다. 개성은 비정상으로 규정하여 환자와 같이 취급하고 자유로운 의견은 경험의 결핍으로 인한 통찰력의 부족함으로 취부하여 묵살당한다.

심지어 필자의 의대에서 자주 쓰던 말이 있는데 '닥암'이었다. '닥암'은 '닥치고 암기해'의 약자로 공부하다가 무언가 궁금하여 질문을 하는 동기들에게 서로 학업을 독려하던 용어이다. 의학을 이해하는 것보단 그냥 암기하는 게 빠를 뿐만 아니라 암기하지 않으면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최종적으로 유급이라는 불량 판정을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닥암'이 무슨 학문이며 공부이겠으며 '닥암'을 할 수밖에 없는 장소가 무슨 대학인가. 고등학교 수능도 이보단 더 학문에 가까웠다. 의대는 의사 제조 공장 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떠한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할 것 일까. 문제는 시스템이라고 본다. 닥터 K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느꼈던 가장 큰 불편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K가 어릴 적 꿈꿔왔던 이상향, 즉 인류 사회에 기여하려고 했다는 점과 현재 닥터 K의 속물적인 모습 사이에 있는 괴리에 있다. 이러한 인생의 원인은 K가 잘못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든 시스템에 있다.

공장처럼 의사를 제조하는 시스템. 우수한 의료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시스템. 인류에 대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묵살하는 시스템. 경제적인 성공과 발전에 지나친 가치를 두는 시스템. 똑똑했던 고등학생을 사회의 부품으로 만들어 돈으로 입막음 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 모든 시스템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시스템.

의대 교육도, 전공의 수련 과정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있는 추가적인 모든 의사들을 관리하는 교육과정도 공장처럼 양성되는 의사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고민하는 의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인력은 양성하는 게 아니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의사를 왜 양성하는가. 의사는 양성하는 게 아니라 깨우치는 것이다.

환자를 위하는 방법을 깨우치고 인류를 위해 고민하는 법을 깨우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깨우치는 교육이 필요하다. 1년 의사 배출 인원, 1년 전문의 배출 인원 이런 식의 양적 접근은 교육이나 수련 방법에 잘못되었다. 무슨 이산화탄소처럼 배출량을 측정하여 의료인력의 수급을 정한다니, 접근법이 매우 이상하다. 의사 한 명, 환자 한 명, 사람 한 명의 고통을 덜기 위해, 박탈과 소외감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지지할 것이고 어떤 관점을 취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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