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소리

남궁인의 시청타촉 - "타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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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0.



일 년의 마지막 날에도 엄연히 아픈 사람은 있다. 사람들이 행복한 한 해를 떠올리고, 다음 희망찬 한 해를 생각하며 큰 보폭으로 종종거리며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에도, 아픈 사람은 있다. 아픈 사람에게는 그 날이 해(年)의 마지막 날이건 다른 날이건 상관이 없다. 아프지 않는 일은 그들에겐 기약 없는 상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 아프고 있는 사람이 지난 해의 행복이라던지, 희망찬 내년을 떠올릴 수는 없다. 그래서, 행복이란건 워낙에 있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은 모든 것을 잊고 더욱 쓸쓸하게 아프다.

1.

119 침대에 실려 쪄붙은 술냄새가 나는 노숙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노숙자가 119 침대에 실려 오는 일은 일반인이 119 침대에 실려 오는 일보다 흔하며, 당연히 해결하기는 훨씬 힘들다. 그 해 마지막 날 밤 근무하던 나는 그 실려온 노숙자를 보고 나의 가벼운 불운을 생각하며 약간 눈살을 찌푸리고 환자를 보러 나섰다. 어디가 아프냐는 말에 그는 며칠 전부터 생긴 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그 외에 손발이 저리고 저미면서 오그라드는 것 같다고, 그것도 며칠 전부터 계속된다고 했다. 나이는 사십대였고, 노숙자 특유의 지저분한 옷가지와 냄새가 도드라져 보였다. 올해 초에는 풍까지 왔었고, 최근엔 따로 식사 없이 술만 마셨다고 했다. 그는 그의 저린 손으로 아픈 뱃가죽을 꼭 붙잡고 구부린 자세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다지 특별한 내용은 아니였으므로 나는 덤덤히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진찰을 시작했다. 그의 배는 내 손이 닿는 즉시 고통으로 극심히 떨었다. 무엇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특히 방치된 노숙자에게는 상상을 넘어서는 무엇이든 다 있을 수 있다. 검사를 해야했다. 하지만 항상 비용 문제가 걸리게 된다. 이런 내 맘을 갑자기 읽었는지 그는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낸다. '여기 돈이 있어요. 돈이라면 여기 있으니 제발 부족함 없이 치료해주세요. 아니 이 돈을 원무과에 미리 맡기도록 하죠. 원무과 선생을 불러주쇼.' 봉투에는 정렬된 만원짜리가 들어 있었다. 백만원은 족히 되어 보였다. 담당 원무과 직원은 중얼거리며 다가왔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 그는 설명했다. '여기는 돈을 맡아주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돈을 다 맡을 수는 없어요. 다만 당신은 의료보험이 말소되어 병원비가 많이 나올 것이고 체불 가능성이 높으니 보증금조로 삼십만원만 일단 떼어 가겠습니다.' 내가 CT처방을 내자 그 직원은 다시 환자에게로 갔다. '여전히 돈을 맡을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검사비가 많이 나왔어요. 삼십만원정도 더 주셔야겠습니다.' 봉투는 빠르게 얇아졌다.

2.

보증금이 있었으므로 검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환자는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돈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니, 일방적으로 혼자 말하기 시작했다. '피검사를 하겠습니다.' '무슨 검사든 해주쇼. 돈은 방금 냈고 더 있소.' 'CT를 찍겠습니다.' '방금 돈을 냈으니 마음놓고 찍으쇼. 안아프게만 해 주세요.' 진통제 맞겠습니다.' '이게 안아프게 하는거요? 더 많이 써도 좋소. 백만원을 맡긴다니깐 안맡아놓구선.' 돈자랑인지, 푸념인지 모를 말들이 조용한 응급실에 오갔다. 어쨋든, 일반적으로, 사람이 돈에 관해서 계속 지껄이면 정말 꼴사납다. 이젠 응급실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고, 환자는 이제 누가 묻지 않아도 이야기했다. '돈... 돈을 찾아 왔다니까.' 나조차도 그 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마음 속에서 미움이 앞서가고 있었다.

3.

검사에서는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간수치가 약간 높은 것 외에는, 정말 아무 것도, 마치, 아프지도 않은 사람인 것처럼.

4.

나는 그 노숙자에게로 가서 이야기했다. '검사에선 이상이 없습니다. 깔끔해요. 그래서 해드릴 것도 많이 없습니다. 그렇게 술을 마셔서 생긴 알코올성 위염으로 인한 복통과, 알코올성 신경병일겁니다. 애초에 그렇게 곡기를 끊고 술만 마시며 아프지 않기도 힘듭니다. 이건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네요. 시간이 걸리는 일일 겁니다.'

그 붉은 눈과 남루한 복장의 노숙자는 한동안 침대 모서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나는 사업가였소. 그리고 보시다시피 완전히 실패했지. 노숙인으로 산게 언제부턴지 기억 나지도 않소. 길바닥에서 찬 소주만 마시고 살았지. 그러던 어느 날 배가 아팠소. 처음에는 술을 마시면 배가 덜 아파졌지. 하지만 점점 술이 깨도 배가 아프기 시작했소. 그래서 더 마시고, 그러면 배는 가라앉는 듯 더 아파지고. 그리고 오늘은 너무 참을 수가 없이 배가 아팠소. 술을 아무리 마셔도 숨조차 쉬기 힘든 통증이 줄어들질 않았소. 손가락 하나도 댈 수가 없었소. 이러다 그냥 죽겠구나 싶었지. 이 통증만 가시면 무엇이든 괜찮을 것 같았소. 그래서 나는 올해 벌었던 돈을 다 합친 백만원을 은행에서 찾았소. 그리고 전화기가 없어 119를 부르지도 못했지.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죽게 생겼으니 119에 신고해달라고 했소. 그리고 그걸 타고 온 거요.'

이런 제길. 나는 눈 앞이 캄캄해지고 머릿속이 망치로 얻어맞은 것 처럼 멍해졌다. 나는, 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사람이 일년이라는 시간동안 백만원을 모으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했는지, 그 세계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나로써는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인내가 있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일년간의 고통과 인내와 바꿀 수 있는 하루치의 어마어마한 통증에 관해선 그 거대함에 무릎을 꿇은 듯,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다. 내가 알지도, 상상하지도 못하는, 격렬하고도 깊은 통증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올해 365일의 인내가 든 봉투를 들고, 제발 아프지만 않게 해 달라고, 그 돈을 내가 뱀의 혀처럼 내밀어 잘라먹고 했던 말은, '검사에선 이상이 없습니다. 해드릴 것도 많이 없군요.' 따위의 말이였다. 손과 발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려왔다.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딴 짓을, 의사가 하는 일이라고 내가 하고 있는 것인가. 부끄러워서, 정말 고개도 들 수도 없게 창피해서,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5.

12월 31일이였다. 그의 새해는 나의 새해와 동시에 왔다. 잠시였지만, 그는 나와 새해를 같이 맞았다.

6.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통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원인이 아니라는 거지요. 아플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이해해야 합니다. 당신의 통증은 지금 생활 모든 것에서 기인합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몸을 망가뜨리면, 안아프실수가 있겠어요. 저는 환자분이 돌아가서 따뜻한 밥을 떠먹고 따뜻한 곳에서 잤으면 합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통증이 가라앉는 날도 올 꺼에요. 제가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제 선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없지만, 무슨 일인지 느낀 것을 이야기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부디 본인이 안 아플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밤새 나는 그가 더 치료받을 수 있는 방법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병원 원무과는 아무리 부탁해도 받아주지 않았고, 그것이 그들의 일이였다. 그가 조금 다녔다는 병원에 알아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그것이 그들의 일이였다. 그의 치료는 나의 노력도, 그의 노력도 헛수고였다. 그렇다면 사회의 노력이 필요했는지, 아니면 사회의 책임이 필요했는지, 그런 것도 불분명했다.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격렬하고도 깊은 통증이 있다는 것이였다.

'죄송합니다. 저와 제 위치의 한계입니다. 아무리 알아봐도 받아준다는 곳이 없네요. 소견서를 쓰면 쓸모없는 검사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조그맣고 인적 없는 병원이라도 가세요. 그리고 부디, 통증의 원인이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술도 제발 그만 마시구요.'

'안 갈거요. 그냥 앓다가 죽겠소.'

그는 소견서를 받아들고 새해 햇살을 받으며 나섰다. 그는, 작년에 모아둔 돈을 간밤에 써버렸으므로, 추운 한해를 시작할 것이다. 비틀거리는 뒷모습은 아직도 아프고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7.

나는 연말의 밤과 새해 아침의 불행을 받아 내고 아침에 퇴근했다. 그리고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깜빡 병원에 잊고 온 물건이 생각나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 서류 좀 챙겨주시겠어요? 당직실에 넣어놓으면 됩니다.'

'아 네 그럴께요. 저 근데, 선생님, 그분이 돌아와서 꼭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하고 갔어요.'

'누구 말씀이신지요.'

'그... 있잖아요... 그 노숙자분이요.'

'...'

'...'

'... 네... 알겠습니다...'

지하철이 덜컹거렸다. 마침 열차는 강을 건너고, 새해 첫날의 햇살이 차량 사이로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신년의 햇볕이라 그런지 눈이 부시게 환했다. 열차는, 저 강 하류의 소실점까지 닿을 기세로, 영원히 덜컹거릴 것 같았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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