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진 칼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그 곳에서 길을 찾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법 발의의 의미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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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 그 곳에서 길을 찾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법 발의의 의미와 전망

 

 

대한전공의협의회 대외협력이사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김현호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 가지 않은 길 > 중에서

 

모두가 불가능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갈 수 없는 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8대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최대 숙원사업이자 올해 최대 의료계 이슈였던 '전공의 특별법'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안, 이하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법) 이 지난 731일 발의되었다.

 

그 동안의 과정은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 이었다.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공감대가 이루어졌지만 관련 국내 법률이 전무한 상황에서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 내는 것은 황무지에서 집을 짓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조영대 수련이사를 중심으로 난생 처음 ''에 대해 공부하고 법안 조항 하나하나를 만들었다. 병원협회를 비롯한 반대 단체, 전공의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 사회의 무관심과 맞서 싸워야 했고 메르스로 인해 발의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법이 가지는 대의와 정당성을 가로 막지는 못했다.

 

지난 10개월간의 치열한 노력으로 60년 넘게 좌절 되었던 전공의 수련환경 정상화가 목전에 다가왔다. 그러나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너무 이르다. 수련환경 개선법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심사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그리고 본회의 상정 및 통과를 남겨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한 치열한 로비가 진행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시도로 인해 법안 통과 자체가 무산되거나, 원래 법안의 취지가 왜곡되어 알맹이 빠진 법안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법 제정만으로도 의료계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상징적 의미는 적지 않겠지만 우리는 허울만 좋은 집을 지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전공의의 든든한 보금자리가 되어줄 기둥 하나하나, 어느 것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제대로 된 집을 지을 것이다.

 

지난해 2차 의정협 합의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실제로 전공의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전무하거나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법이 종이와 글만으로 남아 있지 않으려면 실제적인 수련시간 변화와 초과근무, 당직 및 휴일수당 지급, 출산휴가 보장, 수련 중 교육 내실화 등이 실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련환경의 객관적 평가가 필수적이며, 법안에 따라 새롭게 설치 될 전공의수련환경위원회가 법안 정착의 성패를 결정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중 당직표를 작성하고 정원감축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현재의 체제에서 전공의는 수련환경 변화의 수혜자가 아닌 피해자가 되고 있다. 법안을 위반하는 수련기관에 대한 관리와 지도, 수련기관 당사자에 대한 실질적 제재 또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법안이 시행되면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전임의의 근무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재기되고, 엉뚱하게도 PA 합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전공의를 한 사람의 인격체이자 독립적인 의료인이 아닌 단순한 인력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에 다름 아니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에 괼 수는 있겠지만 이내 곧 무너지고 말 것이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법은 오직 전공의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환자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의료 환경을 바로 잡는 시발점인 것이다. 이번 법안 발의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료계, 나아가 대한민국 의료 사회 개혁의 태풍의 눈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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