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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병원 취업규칙 개정 과정에서 드러난 전공의 처우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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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병원 취업규칙 개정 과정에서 드러난 전공의 처우의 민낯

지난 해 12월 말 부터 정부는 ‘공공기관 방만 경영 정상화’의 일환으로 전국 주요 국립대병원들의 전체 근로자를 상대로 임금체계와 복리후생 규정 개편을 골자로 하는 취업규칙 변경을 추진해왔다. 취업규칙이 개정되기 위해서는 해당 병원 근로자 과반수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전공의들의 동의 여부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요즘 각지의 주요 국립대병원에서는 전공의들에게 취업규칙 개정 동의를 구하는 작업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취업규칙 개정과 관련하여 전공의들에게 전달된 내용은 임금체계를 간단하게 하고, 공무원 수준에 맞추어 복리후생 수준을 줄인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병원 측은 연말 까지 취업규칙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향후 임금인상이 동결되는 등 정부로부터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덧붙였다. 병원 측은 정부에서 내린 지침을 따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성과급제 도입과 각종 수당 폐지 등의 문제로 노사 측 사이에 크고 작은 진통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병원 측에선 퇴직 수당이 삭감되고 각종 수당이 철회된다는 내용을 포함한 동의서가 전공의들에게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객관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취업규칙 개정이 전공의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거나 더 유리한 개편이라고 강조하며 동의를 종용하고 있다. 강한 압력에 기지개조차 펼 수 없이 웅크리고 있어야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사태를 보면서 전공의의 불편한 현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우선 취업규칙 개정안에 대한 동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판단에 의한 자율적 의사에 따라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전공의는 본인 스스로의 권리를 결정함에 있어서도 상부의 압박에 시달리거나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무릎 꿇어야만 했다. 병원 측에서는 진료과에 대한 인적·물적 지원 축소 경고와 함께 위에서 아래로, 보이지 않는 (하지만 느낄 수 있는) 압력을 행사하였다. 개정안에 동의하면 우리에게 인적·물적 보상이 뒤따르고, 그렇지 않을 경우 개정안 부결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동의서 작성인의 실명을 확인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이와 같은 위로부터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로 수많은 전공의의 이름이 동의서에 차곡차곡 남겨졌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최근 국공립병원 취업규칙 변경에 관련해 법률단체들이 우려의 뜻을 표명하며 "공식적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개별 근로자를 대상으로 변경 동의를 구하거나, 관리자들이 개별 접촉으로 설득을 시도하거나 불이익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변경 동의는 근로기준법 제94조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전해진다. 전공의들 역시 불법적인 동의절차를 경험하고 있는 샘이다.

전공의들 사이에서 또한 의문이 되어 왔던 부분은, 입사 당시 전공의는 취업규칙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존재 여부도 알지 못했던 취업규칙에 대한 개정안에 동의하라고 하니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입사 당시 사측과 근로 규칙과 임금에 관한 사항을 명시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도록 되어 있으며, 근로 계약 기간의 소멸시점에 재계약을 할 경우 재계약 시점을 기준으로 재차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에서 근로계약은 통상적으로 1년을 넘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매년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전공의들 대다수는 인턴, 레지던트 입사 당시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아울러 근로계약서에는 근무 장소나 업무내용 뿐 아니라, 근로시간과 근무일 및 휴일 임금이 기재되어 있어야 한다. 전공의들은 여러모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늦은 밤에도 병원불을 밝히고 있다.

적법성이 의심되는 방식으로 진행 중인 취업규칙 개정에 동의해주며 전공의라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낀다. 병원 측에선 취업규칙 개정이 전공의들에게 유리하다며 ‘전공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취업규칙 개정에 동의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공의들이 요구해온 처우개선은 이런 것이 아니었음을 병원 측이 더 잘 알 것이다. 병원 측은 노사간의 갈등이 있을 때 전공의 처우개선을 말하지만 갈등이 수습되고 나면 또 어떻게 태도가 변할 것인가. 병원 측이 전공의를 보는 시각에서는 전체 근로자들 중 가장 손쉽게 자신들 입맛에 맞춰 컨트롤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이 녹아 있지는 않은가.

지난 한 달 간의 시간동안, 병원에서 전공의가 처해 있는 지위의 민낯을 다시 한 번 마주했다. 취업규칙 개정이 추진되면서 과반수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49와 51의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그 것이 지니는 의미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우리 전공의의 의식이 깨어있고, 부당함에 맞서 행동하기에 지금의 우리의 힘은 작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힘이 차곡차곡 모여 49에서 50을 지나 과반수가 되는 순간 우리의 존재는 더 이상 가벼운 것이 아닐 수 있다. 더 이상 전공의의 현실이 지닌 민낯이 안타깝지 않을 내일을 기대해 본다.

제18기 대한전공의협의회 대외협력이사 김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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