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진 칼럼

국민의 건강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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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건강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어느 쪽인가?

최근 정부는 ‘규제기요틴’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규제완화조치를 단행하겠다고 발표 했다. 규제기요틴에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포함되어 있자 의료계에서는 그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공방이 벌어졌고, 급기야 의사와 한의사 중 누가 더 나은 전문가인지 다투는 식의 소모적인 논쟁도 일어났다. 이를 보는 국민들은 의료계에 밥그릇 싸움이 일어났다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의사협회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의협은 직능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의료단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정말로 ‘밥그릇 싸움’을 위해 의료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것이 어느 쪽인지 가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의료영리화를 환영하는 것인가?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 1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규제기요틴에 대한 입장’을 공식 표명하며 "정부가 발표한 규제기요틴에 대해 적극 환영의 뜻을 밝힌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 이유는 규제기요틴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규제기요틴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 사용 허용을 위해서만 추진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경제단체가 건의한 114개의 규제완화 조치 중 하나로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규제기요틴에는 사회적 논쟁이 되고 있는 각종 보건의료정책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규제완화에 대한 의지를 직접 표명하며 "의료서비스를 미래성장 동력과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는데, 이처럼 의료를 ‘성장동력’과 ‘산업’으로 다루겠다는 것이 규제기요틴에 담긴 철학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고 단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사용 허용만을 이유로 들며 ‘규제기요틴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2014년 11월 보건의약 5단체는 “보건의료는 이윤창출의 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의료영리화정책을 반대한다!”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국회에 상정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유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토대로 영리병원 전면적인 허용이 예상되고 그로인한 심각한 의료비의 상승과 의료양극화가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이 성명을 발표한 보건의약 5단체에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약사회 와 함께 대한한의사협회의 이름이 분명히 올라가 있었다. 그런 대한한의사협회가 이번에는 규제기요틴을 찬성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규제기요틴에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핵심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대한한의사협회가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대한한의사협회의 입장은 대체 무엇인가? 의료양극화와 의료비 상승을 일으키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일지라도 단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패키지로 묶여 있다면 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인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를 포함한 사회복지 영역에 대한 전권을 보건복지부가 아닌 기획재정부에 부여해 관리하도록 허용해주는 법안이다. 정부는 의료전문가를 배재한 채 경제관료들과 기업집단에게 의료계의 통제권을 넘기겠다는 것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정말로 이를 ‘적극 환영’하는가? 2014년 9월에는 보건의약 5단체가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물론 대한한의사협회도 함께였다. 규제기요틴에는 원격의료 추진 역시 포함되어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원격의료도 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인가? 한의학에서는 혹시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서도 제대로 된 진료가 가능하신지 묻고 싶다. 물론 지금 정부는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대기업들이 원격의료에 필요한 장비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제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발표된 보건의약 5단체의 성명들이 무색하게도 대한한의사협회는 규제기요틴에 담긴 의료영리화 정책들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을 위해 지금까지의 입장을 뒤집었거나 적어도 정부의 눈치를 보며 암묵적인 동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직능이기주의를 위해 국민건강권을 저버리고 있다는 비판을 들어야 할 것은 대한한의사협회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의료전문가이길 포기하려 하는가?

규제기요틴에 포함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은 보건의료정책의 틀에서 의료 전문가들이 주도하에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단체들로부터 건의를 받아 경제적 관점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런 방식이라면 필경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안전의 문제다. 현대의료기기는 오직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개발되고 현대의학의 필요에 의해 사용되어 오던 장비들이다. 한의학과 현대의학의 학문적, 임상적 통합이 우선되지 않은 채 이를 섣불리 사용한다면 오판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 대한 전문가적 책임감이 있다면 최소한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위해 필요한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고, 진료체계의 수정 보완에 대한 보건의료정책의 관점에서 접근을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이다. 현대의료기기가 그렇게 필요하다면 근본적으로 양방과 한방의 이원화된 체계를 통합해 한의학을 현대화하기 위한 학문적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규제기요틴은 이러한 과정에 대한 논의를 생략한 채 경제인들의 건의를 받고 진행되고 있다. 과연 대한한의사협회는 임상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한의사들을 헤아릴 의지는 있는지 묻고 싶다. 규제기요틴은 의료기기를 판매하고 싶은 기업체들이 얼렁뚱땅 밀어붙이고 있지만, 임상 현장에서의 오판의 책임은 결국 개별 한의사들이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누가 지든 전문가의 오판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 규제기요틴에는 신의료기술평가 규제완화도 들어있다. 지금은 의료기기와 이를 통한 의학 기술이 새로운 것이란 공인을 받으려면 의료인들이 중심이 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절차를 생략하고 심평원에서 간단히 처리하겠다는 것이 신의료기술평가 규제완화다. 의료기 업체들의 의료기 판매를 원활히 해주기 위해 의료전문가들이 수행하는 안전평가장치를 해제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규제기요틴의 모든 정책들은 전문가들의 양심이 아닌 경제단체와 대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방기하고 정부의 잘못 된 정책 추진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함으로써 의료전문가이길 포기하고 있다.

작은 것을 탐하느라 큰 죄악에 눈감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직역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규제기요틴은 단지 경제적 관점으로만 의료계를 난도질하려는 눈먼 칼날이다. 의료계가 세월호처럼 가라앉고 국민들의 건강권이 차가운 물속에 빠질 위기에 처해 있다면 의료전문가들은 차라리 한 목소리로 국민들을 깨워야 하지 않을까? 대한한의사협회가 이러한 질문들에 적절한 해명을 하지 못 한다면 국민들은 더 이상 대한한의사협회를 국민 건강권 수호의 책무를 다하려는 의료전문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제18기 대한전공의협의회 복지부회장 이승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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