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진 칼럼

어떤 가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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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을 날

- 지역전공의협의회가 성공으로 가는 길

 아침 공기가 부쩍 차가워졌다. 길가의 가로수도 새로운 빛깔의 옷으로 갈아입고서 지난 계절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한다. 주변의 시간은 이렇게나 부단히 흘러가고 있지만 병원에서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정체되어 있다는 표현이 정확해 보인다. 바깥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하루는 긴장과 고민. 피로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본다. 서로의 오늘을 한탄하고, 내일을 걱정해 보지만 그들도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기에 큰 해답은 없다. 대개는 이렇게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짧은 대화는 끝이 난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다. 입술을 뗀 것이 나로서는 엄청난 결심이었는데 대부분은 원래 그런 것이고 조그만 더 참으라고 말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또 그 얘기냐’는 핀잔 가득한 눈빛을 받기도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지만, 그 안에서도 많은 고민에 휩싸인다. 개인적인 일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부분은 우리가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병원의 그것과 관련이 있다. 대부분은 어쩔 수 없다는 자기검열의 턱을 넘지 못하고 말지만, 같은 문제가 (혹은 비슷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나타나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면 다시금 용기를 내 이야기를 꺼내본다. 물론 대부분은 푸념으로 시작하겠지만..

 서열화되고 규격화되어 있는 구조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더 나아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체험했고, 공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실패에 손을 들고 목소리를 내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나 자신도 거대한 그 집단의 조용한 일원이 되고 말았던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약할수록,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질수록 내부 구성원의 활발한 의견 개진과 치열한 토론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밑거름이 되면 개개인을 더 한 것 이상의 파급력을 갖게 됨과 동시에,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해결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외부에 많은 전문가가 있지만, 특정 문제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는 다름 아닌 당사자다. 그리고 그것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이런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지난해부터 의료계의 현안으로 많은 갈등이 표출되었다. 그리고 그 사안 중에는 우리 전공의와 관련된 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진료와 수련 환경 속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앞서 말한 구조적인 문제점 이외에도 개인간, 병원간, 지역간 전공의의 소통에는 많은 물리적 제약이 있다. 이러한 제약을 아래에서부터 극복해보고자 시작된 것이 지역전공의 모임이다. 

 부산,경남,울산 지역을 시작으로 올해에는 경기 지역 지역전공의협의회가 문을 열었고, 나머지 지역에서도 공식적인 기구가 설립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목표로 온오프라인 상에서 기초 다지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큰 조직인 대전협의 활동에도 한계가 있는데 인원도 규모도 작고 지원도 부족한 지역전공의협의회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내 놓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이 조직이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활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은 옳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많은 곳에서는 아직 걸음도 떼지 못한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아직은 전공의의 관심과 참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근무환경이 주는 제약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실제로 조직에 대한 정보 전달의 부족에 기인한 측면도 적지 않다. 지역 내 전공의들만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안들이 존재하고, 이 문제의 해결책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도 지역 전공의다. 보다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전공의협의회와 중앙의 대한전공의협의회 간의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의견 나눔도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중앙정부와 지역자치단체 사이 소통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방사능폐기물 저장소의 입지 선정과 같은 문제를 통해 경험해 보았다. 여러 장소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적절히 모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대한전공의협의회 차원에서 소통의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의 전공의에 의한 전공의를 위한 조직이 되어야 한다. 재정적인 지원을 비롯해 지역전공의협의회가 자리를 잡기까지 많은 곳의 도움이 필요하고 지역 내 전공의 이외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쳐 외부의 힘에 의해 조직이 좌지우지 되거나 정작 우리의 의사보다 그들의 의견을 중시하는 것은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전공의협의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전공의협의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는 다름 아닌 우리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아직 미약하고 서툰 걸음걸이지만, 많은 전공의들의 바람과 희망이 참여로 이어져 그들과 함께 걸어간다면 지역전공의협의회가 성공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제18기 대한전공의협의회 대외협력이사 김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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