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진 칼럼

알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우리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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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우리의 권리”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리집 구석에서 매를 맞고 있다면, 그 원인은 한 가지 돈이 없어서라고 
알려져 있다. 반면에,
가운 입은 의사가 병동 한복판에서 매를 맞는다면, 그는 왜 맞을까.
왜 맞을까?
모르긴 몰라도 원인은 복잡할 것 같다.

장면1. 응급의학과 전공의 K선생님의 경우
모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2년차인 K 선생님은 복통으로 내원한 환자를 진료하려던 중 보호자에게 매를 맞으셨다. 주먹으로 가슴부위를 한 대, 발길질로 정강이를 한 대. 왜 맞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며 응급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니가 의사냐, 왜 빨리빨리 안 오고 이제 와서 청진기나 들이 미냐. K선생님은 모멸감을 느꼈지만, 참았다. 상식 수준을 넘은 공격성을 지속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보호자에게 K선생님은 자신이 방금 CPR을 한 차례 했고 그 와중에 acute MI가 의심되는 Chest pain 환자가 들어와 먼저 본 다음 올 수 있었노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서러움이 왈칵 밀려오려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이 보호자는 위법행위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K선생님은 보호자와 실랑이 하는 대신 차분히 112에 신고를 해서 폭행과 진료방해죄 등으로 고소하고 처벌받기 원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전공의도 사람이다. 존엄성을 지킬 권리가 있다. 욕을 먹지 않을 권리, 매를 맞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하나마나한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말이 절실한 곳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이 아직도 많다. 경찰이 있고 법이 있다지만 주먹은 빠르고 법은 느릿느릿 절차를 밟아야 한다. 육체적 고통과 심적 피해며 진료의 차질 같은 것을 되돌릴 수도 없지만 폭력 근절에 일조하자는 차원에서 신고를 한다. 고소장을 쓰면서도 찝찝하다. 세상 사람이 다 바뀌지 않는 한 어차피 일정한 비율의 ‘진상’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이것이 답답한 지점이다.

장면2. 정형외과 전공의 M선생님의 경우
모 대학병원의 정형외과 2년차인 M선생님은 수술을 마친 후 드레싱 준비를 하던 중 교수님에게 매를 맞으셨다. 주먹으로 가슴부위를 한 대, 발길질로 정강이를 한 대. 왜 맞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며 병동은 순식간에 생지옥이 되었다. 니가 의사냐, 왜 빨리빨리 회진준비 안 하고 이제 와서 드레싱이나 챙기고 있냐, M선생님은 모멸감을 느꼈지만, 참았다. 상식 수준을 넘은 공격성을 지속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교수님에게 M선생님은 자신이 방금에서야 수술정리를 마쳤고 새벽부터 응급실과 병동콜을 처리하느라 할 수 없었노라고 설명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서러움이 왈칵 밀려오려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아무리 맞아도 일을 제대로 못 하는 바보구나. 부끄러운 마음에 교수님께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어제도 맞았고 내일도 분명 맞을 것 같지만, 그렇게나 일을 못 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전공의는 누구에게라도 욕을 먹지 않을 권리, 매를 맞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하나마나한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말을 모르는 사람들 밑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이 아직도 많다. 경찰이 있고 법이 있다지만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모순에 반기를 들 용기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매일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과 얼굴을 붉히는 걸 즐거워할 사람은 없을 것인데 하물며 스승으로 ‘모시던’ 사람과 싸운다는 것은 원초적인 공포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 어차피 폭력은 순환할 것 같다. 그것이 어려운 지점이다.

폭력을 정당화 하는 말들은 예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말을 듣지 않는 머슴한텐 멍석말이가 약이다’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 번 패야 한다’ ‘조센징은 게을러서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상식처럼 쓰이던 말들이 지금 듣기엔 황당해진 이유는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어떤 경우라도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을 도덕적으로 옹호해주지 않는다. 나아가 그것은 법적으로 제재되는 일이도 하다. 지금의 상식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전공의가 매를 맞는다는 사연은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뉴스거리’가 될 만한 그런 곳에서 하루하루의 일상을 보내는 전공의들이 아직 있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환경에 갇혀 꼼짝 할 수 없다고 느끼며 절망감에 휩싸인 경우 사람은 흔히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기 마련이다. 내가 못나서, 내가 잘못해서..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해두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을 포함한 이 세상 누구도 ‘매를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북어까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도 조센징도 머슴도, 사람인 이상 매를 맞지 않을 권리 정도는 있다. 전공의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인류가 이뤄낸 합의다. 

백번 양보해 전공의들이 매를 맞아야만 간신히 돌아가는 의국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지경이면 그게 병원 잘못이지 전공의 잘못인가? 폭력으로 강제해야만 무언가가 작동하는 구조적인 문제는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전공의 폭력피해가 인권문제이자 노동자로서의 권리의 문제이기도 한 이유이다. 전공의가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제약받는다면 법에 호소라도 할 수 있지만 전공의들이 가진 일 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적정한 노동시간 등)는 그 동안 법도 외면해왔다. 우린 아직 갈 길이 멀다.

세상은 그냥 바뀐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꾼 것이다. 더 주장하고 더 요구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고 다수의 힘이 모이지 않으면 시작조차 되기 어려운 일이다. 전공의들은 각자 너무나 바쁘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띄엄띄엄이라도 이어지는 대화가 있다면 조금 낫지 않을까. 혼자서 용기 내지 못 하는 동료에게는 작은 위로라도 건네주고 용기 내는 동료에게는 연대의 힘을 보태는 것, 그것이 대화의 힘일 것이다. 전공의들에겐 우선 광장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그 지점에 대해 대전협이 해야 할 일을 고민하는 중이다. 우선 모바일 시대에 발맞춰 새롭게 ‘전공의 어플’을 구축 했다. 각자의 의국에서 외로운 당직을 서고 있는 전공의들이 물리적인 거리를 초월해 함께 와글와글 수다를 떨 수 있는 광장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제18기 대한전공의협의회 복지부회장 이승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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