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외면받는 응급환자> ①응급센터에 수술의사 없다니…큰사고 당하면 나는 어쩌나

<외면받는 응급환자> ①응급센터에 수술의사 없다니…큰사고 당하면 나는 어쩌나   '씨 마른' 외상·응급전문의…비인기 과목이어서 전공의 부족   <※ 편집자주 = 지난달 30일 교통사고를 당한 두 살배기 김민건 군은 13곳의 병원에서 "수술실이 없다",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절당한 뒤 사고 7시간여 만에 겨우 찾은 병원 수술실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에 대해 사회와 의료계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보건복지부는 김 군의 치료에 책임이 있는 병원 3곳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여 '엄중 처벌'하겠다며 나섰지만, 그보다는 국내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점검이 더 시급해 보입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손자, 친구인 김 군 죽음을 계기로 외상·응급 전문의 부족, 응급·외상센터 만성 적자, 응급진료시스템 컨트롤타워 부재 등 근본적인 문제점 해결을 위한 기획시리즈를 3꼭지로 나눠 송고합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김진방 임채두 기자 = 두 살배기 아이가 치료할 병원을 찾다가 하늘로 떠났다.   지난달 30일 오후 5시께 전북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 한 건널목에서 외할머니, 누나와 함께 길을 건너던 김민건(2) 군은 후진하던 견인차량에 치였다.   김 군은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전북대병원 권역응급센터로 이송됐지만, 수술실 2곳은 이미 다른 환자의 수술이 진행 중이었다.   전북대병원은 김 군을 다른 병원으로 전원(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절차)하기로 하고, 병원을 수소문했지만 권역외상센터 6곳을 포함한 13곳의 병원에서는 김 군을 받을 수 없다고 답변했다.     문의했던 병원들은 "수술실이 이미 다 찼다", "수술할 의사가 없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아주대병원에서 김 군을 치료하겠다고 나서 어렵사리 헬기를 이용해 전원 절차를 밟았지만, 김 군이 수술실에 들어간 것은 사고 7시간 뒤였다.   중증외상환자를 살릴 수 있는 1시간, 이른바 '골든아워'(golden hour)는 한참이 지났다.   결국 다음날 오전 4시 40분께 김 군은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중상을 입은 김 군의 외할머니도 전북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두 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보건복지부는 이 사건과 관련된 병원 3곳에 대해 진상조사를 한 뒤 '권역외상센터 지정 취소' 카드까지 꺼내 들며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이미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여러 차례 일어났고, 언젠가 터질 문제가 인제야 세상에 알려진 것뿐이라며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술할 의사가 없다'라는 병원의 변명은 사실일까.   국내 의사 수(인구 1천명당 2.2명)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3.3명)에는 못 미치지만, 의사 증가율은 OECD 국가 중 1위고, 2020년 내외로 OCED 평균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는 게 의료계 분석이다.   다만, 중증외상이나 응급의학 관련 전공 전문의는 기피 전공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교통사고 환자 대부분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신경외과도 인턴 1, 2등이 지원하던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 후순위로 밀린지 오래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전체 회원 7만6천328명(2014년 기준) 중 응급의학과는 1천45명, 흉부외과 1천55명, 신경외과 2천470명으로 내과,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등 인기학과와 비교하면 2∼3배 수가 적었다.   김민건 군 치료 거부 사유 답변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도자 의원실 제공]     비인기과 의사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의사들의 '기피현상'이 이해가 된다.   외과나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보통 일주일 164시간 중 100시간 이상 외래진료를 보고 수술방에 들어가면서 혹사당한다.   야간 진료나 수술을 하면 다음 날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 병원 여건상 계속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 한 지역거점병원의 외상전담전문의 수는 '1명'이다. 이 의사는 당직 때면 24시간 병원에서 대기하며 응급환자의 수술을 맡는다. 다음날 휴식을 취하고 싶어도 급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이 오면 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때가 많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런 전공을 피하는 이유를 과도한 업무와 환자 생사를 다루는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진웅 대한응급의학회 법제의사는 "일단 중증 응급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사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이에 따른 보상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며 "기피학과의 전문의는 인력이 가뜩이나 부족해 가물에 콩 나듯 들어오는 인턴, 전공의들이 혹시 떠날까 봐 어려운 일조차 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한 종합병원 관계자도 "외상전담전문의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인기학과처럼 개원할 수도 없어 경제적 이익도 적은 데다가 환자 보호자로부터 봉변을 당하기 일쑤"라며 "한마디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는 고역을 매일 치른다. 확실한 보상책이 없다면 이런 현상은 날로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0개 권역외상센터에 있던 중증외상환자 3천526명 중 85명이 이유 없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전문가로 구성된 외상자문위원회가 집계된 현황을 심의한 결과 85건 모두 부당하고 이유가 없었다.   이 법제의사는 "의사들이 환자를 맡지 않겠다는 이유는 간단하다. 괜히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 맡았다가 잘못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유족이나 관계인이 내는 민원이나 분쟁은 한마디로 골치 아픈 일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실은 의료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진다.   중증응급환자를 다루는 학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의료계에 만연하자 고민에 빠진 전문의들은 의사보조원(Physician Assistant·PA)이라는 편법을 만들어냈다.   진료와 수술 등 의사 역할을 하는 PA는 간호사나 응급구조사, 심지어 간호조무사가 맡는다.   단 한 번도 단속이 없었기 때문에 전문의도 불안하지만, 환자를 돌볼 의사가 없어서 이편을 택한다.   계속 바뀌는 전공의는 매번 새로 가르쳐야 하지만 PA는 오랫동안 가르쳐 숙련시킬 수 있다는 이점도 편법을 부추겼다.   이 법제의사는 "아직 PA에 대한 실태조사는 부족한 상태다"며 "PA가 성행하기 때문에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지고 제대로 된 외과 의사를 양성할 수 없게 된다"고 털어놨다.   chinak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7 07: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