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성명서

제 30 대 서울대학교 병원 전공의 협의회는 국민 건강권을 저해하고 의료인의 전문성을 침해하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허가’ 추진을 강력 규탄한다. 보건복지부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허가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실제로 작년 연말 한 한의사가 안압측정기의 사용이 개인의 행복 추구권에 해당되는지의 여부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헌재에 신청을 했었고, 헌재는 안압측정기의 사용이 이에 해당한다고 법리적 해석을 내린 적이 있다. 이러한 헌재의 법리적 해석과 뒤이은 보건복지부의 위와 같은 움직임은 의료인의 전문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이러한 행위는 직접적으로 국민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의 무분별한 정책 추진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1.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현행 의료법을 위반하는 명백한 불법행위다.의료법 제2조에 의거하면 의료인을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조산사로 규정하고 있으며, 각 의료인은 자신의 면허가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진료 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만약 당신이 버스 운송업을 하는 고용주라면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2종 면허 소지자에게 시내버스를 운전할 수 있게 해 주지는 않을 것이고,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도 이와 같은 문제다. 정부는 의료법에 의거하여 의사면허와 한의사면허를 달리 발급하며, 비단 의료법 조항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의료를 이용하는 국민들도 이 차이를 상식에 근거하여 인지하고 있다. 나아가 의료 공급자이자 전문가인 한의사는 이 문제에 대해 훨씬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논하는 것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의사들이 음양오행에 대해 논하고, 진맥을 행하고 침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의료 이용자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한의학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의사가 한의학을 포장해서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전문성의 문제에 앞서 의료 이용자들에게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의료 공급자인 한의사 스스로도 전문직으로서 가져야 할 도덕에 흠이 생긴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한의학계와 정부는 의료계의 ‘현대의료기기 사용허가 반대 입장’을 직군간 알력 다툼으로 격하시키려 한다. 하지만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여부는 직군간의 알력 다툼, 그리고 경제적인 이해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윤리의 문제다.  2.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한다하여도 한의사는 임상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치료를 하는데 명백한 한계가 있다.환자가 의료진이 권하는 일반촬영, 초음파, 내시경, CT, MRI 등의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한 검사를 시행하는데 동의한다는 것은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있을 때 적절한 진단을 내리고 합당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검사영상의 판독은 의사들 중에서도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영상의학 전문의의 능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수년간의 훈련을 거친 전문의들조차 신중을 기하는 임상적 의사결정이 그만큼의 임상경력이 없는 한의사를 통해 이루어질 때 이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백 번 양보하여 설령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해도 이에 적합한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CT 검사를 통해 위암이 발견된다고 해도, MRI 검사를 통해 급성 척수 압박 증상이 발견된다고 해도 이에 대해 한의학적 처치가 가능한가? 이에 대한 답은 명백하고, 나아가 환자를 위한 치료를 할 수 없음에도 검사만 하겠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도덕이 부재한 전문가 집단, 한의학계의 잇속 챙기기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같은 의료인으로서 얼굴이 붉어질 만큼 부끄러운 일이다. 한의학계의 현대의료기기에 대한 학부 교육이 있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현대의료기기를 통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기기의 품질 및 정도 관리, 그리고 검사의 판정 관리가 필수적인데, 기본적인 관리가 되지 않을 것임이 명약관화한 상황에 기초적인 학부 교육만 있다고 이를 정부에서 승인하는 것은 국민 건강권을 짓밟는 일이다. 정부는 ‘상식의 패배’를 만천하에 알리는 현재의 행보를 당장 멈추어라.  3. 한의학계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국민 건강권을 침해하고 불필요한 의료비용 증가로 건강보험재정에 부담을 준다.근본적인 의학지식이 다른 한의사 집단은 현대의료기기 사용의 적응증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마치 의사가 침술을 사용해야할 지 탕약을 사용해야할 지 판단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검사 적응증에 대한 이해의 부재는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지 않는 실수나 필요 없는 검사로 이어진다.검사의 부적절한 처방은 환자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고, 이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손실은 개인 가계에 대한 위협 및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검사에 대한 몰이해로 국민 건강권에 대한 위협, 개인 가계와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부담이 발생할 것이 명백함에도 한의학계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추진해야겠는가?  보건복지부의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추진은 한의학계와 의학계의 알력 다툼이나 한의학계의 발전 여부라는 시각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땅에 떨어질 전문직의 도덕과 의료 이용자의 신뢰에 대한 문제이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에 대한 문제다. 젊은 의학도로서 본인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지키는 것조차 힘든 가운데 왜 이러한 문제에 분노하겠는가? 국민의 기본 권리인 건강권이 당국의 무심한 비전문적인 결정과 전문성을 망각하고 양심을 내려놓은 한의학계의 잇속 챙기기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의학 살리기, 경제 살리기 위한 규제 완화와 같은 어떤 아름다운 이름을 붙이더라도 한의학계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의 침해와 불필요한 혈세 낭비를 초래할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재고하길 바라며, 서울대학교 병원 전공의들은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의사 본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강력히 반대하는 바이다. 제 30대 서울대학교 병원 전공의 협의회